참으로 오랫만에 한가로운 날입니다. 집에서 딱 세시간의 과외교습(!)을 하면 되는 날. 아침부터 광나게 청소까지 해대면서 모처럼의 시간을 썼더랬어요. 그래서 이제 조금 차분히 이 프로젝트를 돌아봐야겠다고 마음먹어 봅니다. 내일이면 또다시 헐떡대는 시간과의 전쟁이 시작될게 뻔하거든요.
이 프로젝트의 초반에도 몇번 언급했지만, 저는, 어디 매어있는 직장도 없고 수발해야할 남편이나 자식새끼도 없고, 돈은 더더욱 못버는 쓰리아웃인생이랍니다. 그런데 아니 뭐 가 그리 바쁘다고 매일 징징거리는 걸까.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있을것 같아 조금 소심해 집니다. 사실 말이 좋아 '후리'하게 사는 아티스트 인생이지, 문화생산은 물론, 각종 잡일 알바를 따라다니기 위해서는 늘 시간을 헐렁하게 비워두고, 괜찬은 프로젝트나, 일용할 임금을 주실 분들의 전화를 지둘리면서 장단을 맞추어 주어야만 하는 것이죠. 그렇게 불안불안허게 살다보며는, 시간이 있어도 있는거 같지 않고, 밤낮은 완전히 뒤바뀌어 관공서 근무시간과 점점 멀어진 인생을 살면서도, 매일 마음만은 대한민국을 별자로 돌아댕기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리 살아봐야, 손에 남는건, 전시가 끝나고 쓸모없어진, 어디 놓아둘 자리조차 없는 산업폐기물 덩어리들, 벽에 걸어두고 싶어도 온가족의 반대에 부닥치고 마는 알 수 없는 이미지들.그리고 점점 바닥을 쳐가고 있는 저금 통장들. 점점 추례해져 가는 외모와 정신적인 피폐함들. 들. 들. 뿐이죠
나는 늘 버스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릴때마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상상을 합니다. 저사람도 나처럼 돈을 못벌까. 저사람도 나처럼 사회가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할까? 저사람도 나처럼 피곤할까? 그렇게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하고 질문하고 상상하다보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나처럼 피곤하고, 지치고, 가끔은 자기혐오에 빠지곤 하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들고, 비로소 나는 그리 특별하지 않아! 라고 자족하곤 합니다.
정류소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어느날 삼백만원을 줄테니 작품을 하라는 제안이 들어왔고, 나는 앞뒤 보지 않고, 강의도 없는 방학에 임금이 생긴것에 기뻐할 따름이었죠. 그러나 그들의 제안은 '공공을 위한 미술'일 것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습니다. 나는 삼백만원으로 나의 노동력을 가치있는 것으로 돌려내는 동시에 공공을 위해 미술적인 작업을 해야만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공공성'이라는 말에 큰 의구심을 가지고 긴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나는 공공미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도 없거니와, 공익과 공리보다는 개인의 쾌락이 늘 우선해야한다는 가치관으로 살아왔기 때문이죠. 나는 사실 거리에 있는 90%가량의 벽화나 공공 조각, 공원, 공중화장실등을 무척 싫어합니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나는 당신들의 혁명에 가담하지 않겠다"던 엠마 골드먼의 말은 아예 적어가지고 다닐 정도인데, 나는 무엇을 공공에게 돌려 놓아야 하는 것일까. 공공성이라는 문제는 지금까지도 나에게 그리 명쾌한 부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쨋든 임금을 받은 이상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역시 자본의 약빨은 최고 입니다. 하여 저는 넘어진김에 쉬어가고 노느니 개팬다는 엣 어르신들의 헛소리를 이기회에 온몸으로 체득하고저 '공공성의 비밀'을 밝혀 주지 않는 주체측을 향해 며칠간의 파업으로 대응하였습니다. 그러자 왠지 진짜 임금 노동자가 된것 같아 조금 후끈해 지기도 했습니다. 체현의 정치란 그런것이였습니다.
공공성에 대한 나의 해석은 보다 정서적인 방향으로 선회하게 되었습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나에게는 어떠한 집단에 끼어들어가거나, 관공서를 설득하거나, 지역의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예술가적인 윤리를 짚어보는 정도의 센스가 없는것이 분명했습니다. 나는 아주 원론적이면서도 가장 필사적인 미술의 영원한 숙제인 "소통"의 지점에서 정서적인 공공성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따가운 햇볕을 맞으며 미간을 찌푸린채로 버스를 기다리는 버스정류소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어졌습니다. 정류소는 기다림의 장소이기에 停留所 라고 쓰지만, 정류소에 영원히 머물러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죠. 정류소는 오히려 늘 떠나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위한 영원히 흐르는 장소였습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붙잡고 말을 거는 것은 오히려 공공의 적이 될 소지가 높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이 끊임없이 흐르는 장소에서 어떠한 얘깃거리 하나를 공유할 수 있었으면 했어요. 그리고 그 장소가 그들을 잠시라도 집이나 일터가 아닌, 조금은 다른 저편의 상상의 공간, 환영의 공간으로 이끌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停留所를 停流所로 바꾸어내고, 나의 이야기를 담아 작은 책으로 만들었고, 그것을 정류소에 비치해 누구든지 자유롭게 가져 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내가 가끔 버스정류장에서 하는 생각들이예요. 아까도 언급했지만, 나는 그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내가 하는 생각을 그들도 할 것이라고 믿었죠. 가끔씩 친구들을 만나면 그 생각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스를 얻어내기도 했어요. 이야기를 채워가는 작업은 조금 외로왔어요. 그리고 책이라는 매체는 버스와 같은 탈것에 정말 잘 어울리는 물건이라고 생각했죠. 다행히 나는 그간 몇몇 책을 만드는 작업을 해왔고, 그리 어렵지 않게 이야기와 이미지를 담은 책이 만들어 졌습니다. 임금을 받았기 때문에, 인건비를 주고 친구를 고용해 함께 일했죠. 그래서 일은 더 쉬워졌습니다. 물론 배포의 문제가 남아있었지만 말예요.
책이 모두 인쇄된 후에, 나는 마치 폭탄을 설치하는 테러리스트마냥, 쇼핑백에 책을 넣어 다니면서, 홍대주변의 한 정류소에 책을 몰래 놓고 오곤 했습니다. 어떤날은 아침에, 어떤날은 아주 한밤중에, 어떤날은 벌건 대낮에, 어떤날은 나도 버스를 기다리는척 정류소에 앉아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기도 하고, 어떤날은 파파라치 처럼 먼곳에서 바라다 보며 사진을 찍기도 했죠. 그리고 어떤날을 책을 놓아두자마자 재빠르게 그 장소에서 사라져 버리기도 했어요.
사람들은 너무나 바쁜 삶을 살고 있더군요. 무엇이 놓여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제일 많았고, 관심을 가지지만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금새 시선을 옮겨가곤 했죠. 관심있게 한장한장 책을 들여다 보던 사람들도 책을 그냥 그자리에 놓고 가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몇권이나 가지고 가기도 했습니다. 가장 강적이었던 사람들은 소위 아줌마라 불리는 군단과 청소부 아저씨 였죠. 아줌마들은 사람이 앉아 있어야 할 장소에 놓여있는 이 불청객에 짐짓 화가 났던지, 책을 밀쳐 버리고 엉덩이를 들이밀기 일쑤 이고, 행여나 청소부 아저씨에게 붙들려 모조리 쓰레기장 행이 되지 않을까 싶어, 청소부 아저씨가 나타나면 그자리에서 아저씨가 갈때 까지 지키고 서있거나, 다시 책을 회수해 도망가곤 했어요. 그렇게 약 한달여에 걸쳐 500권의 책이 배포되었고, 소비되었습니다.
다시 이야기를 앞으로 돌려, 그래서 나는 공공성이라고 하는 것을 획득한 것일까. 라고 묻는다면,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수 밖에 없겠네요. 제 머릿속엔 이 책들이 사람들의 손과 손을 타고 이동해 다니면서 사람사이의 공간들을 메꿔 갔으면 하는 기대가 들어있지만, 아직 그 결과나 증거를 찾을 수는 없어요. 일전에 <밑줄긋는 남자>라는 책을 친구와 보면서 재밌어 했던 기억이 있는데,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누군가가 줄을 긋거나 메모를 해둔 것을 보면서 짐짓 강한 소통의 그리움을 느끼는 그런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말이죠. 그러한 정서적인 교류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빈 공간을 채워가고, 흐르고 이동하는 사람들과 장소들의 떨림이 얼마나 많은 경계들을 지워내고 있는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대가 이 작업을 이끌어 왔고, 사람들에게로 다가가게 했죠.
어느날 어느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나는 잠깐, 공공을 위한 미술이란 그런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의 주변에 늘 산재해 있는 차고 넘치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거나, 혹은 해결 할 수 있다고 믿는 오만함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삶의 길에 놓여진 흔해 빠진 멈춤 표시와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들을요. 뭐 여전히 잘 모르겟지만요.